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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두산그룹과 형제의난]

두산그룹은 2019년 초 기준 재계 15위의 대기업이다.

대표적인 계열사로는 중장비를 납품하는 두산 인프라코어, 원자로를 만드는 두산중공업이 있다.

 

두산그룹은 한국의 몇 안되는 100년을 넘긴 장수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두산그룹의 창업주 박승직은 1896년 서울 종로에 상점을 차리기로 한다.

 

 

 

박승직 - 가게를 차려야하는데 이름은 뭘로하지?

'박승직상점'으로하자.

 

 

그렇게 박승직 상점이 종로에 세워진다. 

 

 

 

 

 

 

옷감을 파는 박승직 상점은 그저그런 종로의 포목점일뿐이었다.

 

 

 

 

 

 

 

박승직 - 아 큰 거 한방 필요한데.

 

 

 

 

그러던 어느 날

 

 

 

 

박승직 부인 - 저게 뭐시다냐?

 

 

 

 

 

 

 

 

 

 

박승직의 부인, 정정숙 씨가 우연히 백분을 파는 노파를 보면서 자신도 백분을 만들어 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박승직 -  백분???화장품????해봐 한번

 

 

 

 

 

 

 

 

이렇게 만든 박승직 상점의 백분은 엄청난 인기를 끌게된다.

 

물에 잘 녹고 피부에 발랐을 때 미백효과가 좋았기때문에 특히, 기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 백분이 얼마나 파급력이 강했으면 지금까지도 종종 옛날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에도 등장한다.

 

 

 

 

 

 

 

 

 

 

그 백분의 브랜드명은 '박가분'이었다.

 

 

 

 

 

 

하지만 박가분은 1937년 사라지게 된다.

 

유해성 때문이었다.

 

피부가 괴사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박가분의 제조과정은 이렇다.

 

납조각을 식초로 처리한 뒤 장시간 열을 가하면 표면에 하얀가루가 돋는다. 이를 조개껍질가루, 쌀가루, 칡가루와 섞는다.

 

이 납조각의 성분으로 박가분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당시 기존 백분들은 분꽃가루를 썼기때문에 화장을 해도 피부에서 잘 떨어졌다.

그래서 여자들은 화장을 하기위해 일부러 얼굴에 기름을 냈다.

 

하지만 박가분의 백납성분은 얼굴에 아주 잘 달라붙어서 인기가 좋았던 것이다.

 

박승직도 뒤늦게 이를 인지하고 일본 화장품 기술자를 불러서 제조법을 바꿨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이후 박승직 상점의 화장품에는 '납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붙게되었다.

 

 

이후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이 두산산업, 두산기계을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간다.

 

 

현재 두산그룹 회장은 박승식의 장손 박정원이다.

누군가는 두산그룹회장을 박용곤으로 어떤 사람은 박용만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두산그룹은 공동소유, 공동경영 체제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회장을 역임했다.

6명이나 되는데 한명쯤은 판을 깨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박두병 초대회장의 차남 박용오 전 두산그룹회장이 그랬다.

 

 

차남 박용오 - 내가 회장할 차례네. 아들 하고싶은거 다 해.

 

 

 

 

 

 

 

 

 

박용오의 장남 박경원 - 나 두산 상무 안할래. 벤처기업할래.

 

 

 

 

박용오의 장남 박경원은 두산그룹 지분을 처분하고 그 돈으로 전신전자를 인수한다.

하지만 전신전자는 계속 적자가 발생했고 그때마다 박용오가 적자를 메꿔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두산그룹 가족회의가 소집된다.

 

여기서 장남인 박용곤 전 회장이 차남 박용오에게 회장직을 이제 3남에게 넘길 것을 통보했다.

형제끼리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기로 했고 박용오도 박용곤으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았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박용오는 반발했다.

 

오히려 회장직을 넘기는 조건으로 우량기업인 두산산업개발을 달라고 요구한다.

 

당연히 박용오의 조건들은 무시당했고 형제들은 3남 박용성을 차기회장으로 추대했다. 

 

 

 

 

차남 박용오 - 이병철 차남도 같은 짓을 했다지?? 너네 다 감방이나 가라.

 

 

박용오는 7월21일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활용'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3남 박용성과 5남 박용만이 1700여억 원비자금 조성과 800여억 원의 외화 밀반출 등 비리를 저질렀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렇게 박용오는 형제 모두를 배신했다.

 

기자회견 직후 박용오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박용오를 두산가에서 제명한다.

 

바로 다음날 7월 22일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에서도 박용오를 해임한다.

 

양측에서 서로 비자금과 분식회계 폭로가 이어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4개월 뒤 3남 박용성과 5남 박용만이 그룹 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검찰 수사 결과 두산 오너일가의 258억 원 횡령과 2800여 억원 규모 분식회계가 드러났다. 

 

차남 박용오와 3남 박용성, 5남 박용만은 각각 집행유예가 선고 되었다.

 

이후 사면으로 3남 박용성과 5남 박용만은 경영일선에 복귀한다.

 

하지만 차남 박용오는 제명당했기에 두산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박용오는 2008년 3월 건설업계 50위권 성지건설을 인수해서 독립한다.

그리고 1년 뒤 박용오는 자택에서 자살한다.

 

이후 2009년 4남 박용현이 회장직에 오른다.

2012년까지 3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박용현은 회장이라는 타이틀말고도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서울대 의대 교수였다는 점이다.

 

이후 5남 박용만에게 회장직이 넘어가면서 두산은 현재의 산업재 위주로 체질을 바꾼다.

이전까지는 두산하면 OB맥주일정도로 두산그룹은 소비재 위주의 이미지가 강했다.

 

여기서 박용만은 OB맥주를 매각하고 한국중공업과 밥캣을 인수한다.

현재의 두산은 박용만이 크게 기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박용만은 6남 박용욱에게 회장직을 넘기려했지만 이생그룹을 맡고 있던 6남은 회장직을 거절한다.

 

이렇게 회장직은 다시 박용곤의 장남 박정원에게 넘어가며 4세 경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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