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전역을 했다. 3학년 2학기를 다니던 중 이런생각이 들었다. '워킹홀리데이 가보고 싶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해보였다. 외국을 나가서 잘 살 수 있을지도 막연히 걱정됐다.
2개월간 고민했다. 나는 항상 결론을 내릴때 어떤 결정을 그나마 덜 후회할 것인가 생각해본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은 이유는
1 새로운 환경에서 독립해서 지내고 싶다.
2 영어회화를 배우고 싶다.
3 부모님께 돈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벌면서 호주여행을 다닐 수 있다.
영어권 국가 중에는 영국,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가 있었다.
이 밖에 중국, 일본 등 여러 국가가 있었다.
위의 사진이 한국과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체결한 국가들이다.
처음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할때 나는 영국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영국은 1년 동안 발급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수에 제한이 있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한 뒤 휴학한 채로 기다리다가 비자 승인이 나지 않으면 시간만 날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 수에 제한이 없는 호주를 선택했다.
순조롭게 비자발급과정을 거쳤다.
남은 것은 '호주의 어느 도시를 갈 것인가?' 를 고민하는 문제였다.
퍼스라는 도시도 평이 나름 괜찮았으나 혹시라도 도시 이동이 하고 싶을때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은 이동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시드니, 캔버라, 멜버른으로 폭이 좁혀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드니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멜버른을 선택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 첫 호주생활은 멜버른에서 시작 되었다. 그때는 얼마나 마음졸이는 일이 시작될지 알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1시였다. 내가 한국에서 예약하고 온 숙소의 문이 닫혀있었다.
3성급 호텔이라서 그런지 24시간 체크인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숙소 앞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숙소 방문 앞까지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유심칩도 한국유심칩 뿐이었고 이미 휴대폰은 정지를 시켜두고 온 상태였다.
다시 공항주변에 호주 유심칩을 사러가려해도 그 새벽에 택시를 잡기가 힘들었다.
휴대폰을 빌려야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생각난 것은 무조건 편의점을 찾자라는 생각이었다.
택시를 타고 오다보니 몇몇 편의점은 문을 열고 있는 것을 보았기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편의점을 찾다가 세븐일레븐이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무작정 들어가서 알바생에게 휴대폰 좀 빌릴 수 있냐고 물었다. 간단한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알바생은 새벽1시에 자신을 방해하러 온 나에게 흔쾌히 휴대폰을 빌려주었다. 나는 호텔 매니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텔 매니져가 말하는데 내귀에 들린것은 그저 현관 비밀번호 4자리와 내 방번호, Key, Rug 뿐이었다.
우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방 문 앞까지 오는데는 성공.
문제는 열쇠를 찾는 것이었다.
그때 생각났다. 엄마가 내 방에 깔아준다고 사온 털뭉치 같은게 러그라는 것을.
방 문앞 매트를 들어보니 열쇠가 있었다. 한국에서 자고 있는 엄마가 호주에서 고생하는 날 구해줬다.
그렇게 멜버른 첫날을 넘길 수 있었다.
내가 멜버른에서 처음 머물던 George powlett apartments 이름은 아파트인데 그냥 3성급 호텔이라고 보면된다.
매일매일 방청소도 해줘서 편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다행히 호주에서 1달 반 정도는 직업없이 버틸 돈을 가지고 왔다.
다음 날 호텔 숙소에서 맞는 아침
숙소 바로 앞 도로
2일째 되는 날은 멜버른 중심지를 구경하러갔다. 숙소에서 걸으면 30분 정도 걸린다.
참고로 멜버른에는 35번 무료 트램이 다니지만 무료 트램존 내에서 숙소를 구하면 가격이 급등한다.
호텔 로비에 놓은 멜버른 관광지도.
멜버른 공항에도 비치되어있다.
지도에는 트램번호와 주요 볼거리가 표시되어있다.
내 멜버른에서의 첫 점심식사
스테이크도 맛있었지만 저 감자가 진짜 맛있었다. 감자 튀김이 정말 통통하고 감자의 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한국에서 먹었던 기름맛 뿐인 감자튀김은 뭐였나 싶을정도로 맛있다.
공원에 훌렁벗고 누워있다.남 눈치 안본다. 좋은거 같기도 하고 교양없어 보이기도 하고.
정장입은 어른이든 교복입은 중고등학생들이든 지하철역에서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냥 숙소근처 골목인데도 호주감성에 젖어 멋있어보였다.
밤에 길잃어서 헤매다가 보게된 성당. 나중에 알고보니 나름 유명한 곳이었다.
길 헤매길 잘한 듯하다.
그 다음날은 호주 계좌를 개설했다. 은행은 커먼웰스 은행.
계좌개설은 바로 해주는데 저 카드 받는데 2주가 걸렸다. 은행뿐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업무처리가 엄청 느림.
카드는 거주지로 배송오기 때문에 2주 동안 머물 거주지를 찾고 계좌를 만들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제 슬슬 직업을 구해야했다. 사실 계좌를 개설하고 바로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력서 초안을 미리 한국에서 써왔기 때문에 호주에서는 수정만 좀 더했다.
이렇게 만든 이력서를 근처 도서관에 가서 장당 몇십센트를 주고 100장 가까이를 뽑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터 멜버른 도시구경을 다니며 마음에 드는 카페나 음식점에 이력서를 돌렸다.
처음엔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곳에 이력서를 집중적으로 돌렸다.
무작정 들어가서 매니져가 누군지 물었다. 밑에 직원들에게 전달해 달라고하면 제대로 전달이 안될것 같았다.
그리고는 매니져에게 직업을 찾고 있는데 내 이력서 좀 봐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영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었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데 누가 '외국인 필요없어 꺼져'라고 할 수 있겠나.
다들 흔쾌히 받아 주었다.
하지만 현지식당이나 현지카페에서 실제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없었다. 구직자를 구하지 않거나 아직 내 영어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우선 내상황이 급박하니 타켓을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바꿨다.
여기서 생각해봐야할 점은 멜버른이 시드니보다 훨씬 규모가 작다는 점이다.
멜버른 내 한인 식당수도 시드니 내 한인 식당 수와 비교가 안될정도로 적다.
애초에 멜버른으로 오는 한국인들도 적었지만 한인식당 수는 그보다도 더 적었다.
2017년 3월 내가 멜버른에 머무를때 멜버른에서 한인식당을 찾으면 길이 20m 정도의 골목이 나온다.
그 골목에 있는 한인식당이 멜버른에 있는 한인식당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게는 7~8개 남짓.
당연히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한인식당이 갑이고 한인식당에서 일하고자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은 최저시급도 주지않고 대우가 열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워홀러들 사이에서는 이런말이 있다.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다.'
좋은 한국인이 더 많았지만 사실 나쁜 사람이 기억에는 더 잘남는 법이다.
꼭 들어가고 싶은 현지인 식당이 있으면 그 식당이나 카페에서 식사를 했다.
'처음보는 외지인이 주고간 이력서'보다는 '식사하고 간 손님이 주고 간 이력서'가 더 먹힐 것이라는 판단이 었다.
그래도 부족했다. 인터넷에 검트리라는 호주 구직사이트에서 이메일을 100개는 돌렸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현지 일자리도 있었다. 영업직이었지만 그냥 면접이라도 보자라는 마음으로 갔다.
면접을 보러 내려가는 도중 호텔 로비에서 매니져가 말한다.
"오늘까지 방을 빼줘야해"
일자리 구하느라 잊고있었다. 숙소 계약기간이 오늘끝난다는 것을. 그리고 체크아웃시간은 30분 남았다.
연장을 할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당시 멜버른에서 큰 행사가 있어서 거의 모든 숙소가 예약으로 꽉 차있었다.
바로 숙소로 올라가서 짐을 챙겼다. 군대에 있을때 전투준비태세 훈련 이후로 그렇게 빨리 짐을 싸긴 처음이었다.
면접을 다녀올동안 짐만 잠시 맡아달라고 한뒤 면접장으로 향했다.
1명을 뽑는 일자리에 20명 정도의 구직자가 몰렸다. 나와 다른 한국인 1명 유럽에서 온 사람 1명 나머지는 다들 현지인이었다.
영업직이었으니까 다들 영어도 유창했다. 심지어 옆자리 한국인도 꽤 오랜시간 유학생활을 했는지 영어를 아주 잘했다.
나에게 질문이 왔다. 무슨 질문인지도 기억이 안난다. 다만 어차피 떨어질거 기죽지말고 해보자라는 생각 뿐이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는 호텔로 돌아와서 맡겨둔 큰캐리어1개 작은캐리어1개 백팩1개를 들고 나왔다.
근처 호텔에 전부 전화를 걸었다. 혹시 방있냐고
전부 행사때문에 예약자가 가득 찼다는 말만 돌아왔다.
멜버른 중심지에 백팩커들이 가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2군데 정도 돌아봤는데 시설이 너무 열악했다.
방에 침대를 몇개씩 넣어두고 8인실 12인실 그렇게 쓰고 있었다.
그런데서 자다가는 도난사고는 둘째치고 정신병에 걸릴거 같았다.
워홀러들은 이런 8인실 12인실 침대로만 가득채운 숙소를 닭장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다시 몇개의 호텔에 전화를 돌리다가 한군데에서 아직 빈방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바로 그 호텔로 가서 1박에 250불 정도 되는 비용을 신용카드로 지불하며 숙소를 구했다.
그때 한국에서 들고온 돈은 다 쓴 상태였다.
비상금 및 숙소 보증금으로 남겨둔 1000호주달러 그리고 한국에서 혹시 몰라서 발급해온 신용카드 뿐이었다.
신용카드가 없었으면 보증금으로 남겨둔 호주달러를 써야만했다.
따라서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그날부터 2일간 내 숙소를 만들어 준 것은 현대카드였다. 밥도 현대카드가 사줬다....
호텔에서 계속 머물수는 없었다. 2일 동안 호텔비용으로 500불 정도가 나갔다.
근처에 한인 민박을 알아봤다. 다행히 1박 35불짜리가 있었다.
1방에 침대만 두고 사는 닭장쉐어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곳을 선택한 이유는 4인실이라는 점때문이다. 다행히 8인실 12인실은 아니었다.
그리고 주방이 있었다는 점도 한 몫했다. 마트에서 저렴하게 식재료를 사오면 밖에서 사먹는 것보다 돈을 더 아낄 수 있었다.
외식은 보통 일식집 우동이나 한국식당 볶음밥이 1끼에 15불, 외식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40~50불한다.
반면 대형마트에서 사는 스테이크는 12불 정도한다. 호주 대형마트 식재료 가격은 한국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했다.
그렇다고 직업도 없이 계속 멜버른에 머물 수는 없었다.
멜버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1달간 직업을 구하러 다닐 여유가 없었으므로 바로 직업을 구해야했다.
농장이나 공장을 알아봤다.
3개월간 농장or 공장에서 일을 하면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추가로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이게 세컨비자다.
세컨비자를 꼭 따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 미리 따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장은 대부분 소나 양 도축공장이었다. 하는 일은 여러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파트를 지원할 수 있었다.
소나 양 내장을 치우는 일, 바닥에 피를 닦는 일, 고기를 포장하고 운반하는 일 등 여러 파트가 있었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공장같이 햇빛도 못보고 하루종일 기계소리만 들리는 곳은 싫었다. 게다가 내장치우는 일이라니....
그래서 농장을 알아봤다. 쥬키니(애호박), 딸기, 아스파라거스, 포도 등 여러 농장이 있었다.
그 중 나는 딸기 농장을 선택했다.
원래 포도를 좋아해서 포도 농장에 가고 싶었지만 포도 농장 시즌이 아니었다.
딸기농장을 들어가기 위해 미리 농장 슈퍼바이져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일거리가 있었다.
덧붙이자면 슈퍼바이져는 한국말로 관리인이다.
농장이나 식당 등 여러 분야에서 관리자 급을 칭할 때 쓴다.
농장에서 슈퍼바이져는 농장주 바로 밑에서 워홀러들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보통 슈퍼바이져라고 안부르고 형이라고 부른다.
나는 슈퍼바이져에게 지금은 무슨 시즌이냐고 물었다.
딸기농장에서 시즌별로 하는 일이 다르다. 플랜팅(딸기 모종심기), 커팅(모종 가지치기), 픽킹and팩킹 (딸기따기and 딸기 포장)
당시는 4월 초 쯤이었다. 플랜팅 시즌이었다.
슈퍼바이저는 한국인이었다. 간단한 농장소개를 해주었다. ( 나중에 겪어보니 말을 안해주면 안해줬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고민이 되었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카불쳐'였다.
지금은 어떻지 모르겠는데 당시 호주나라or 워홀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카불쳐 농장'을 검색해보면 '악마의 소굴'이라는 말만 넘쳐났다.
그래도 나는 배수진을 친 상태였다. 게다가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하면 나중에 한번 가볼걸 하는 후회가 들 것같았다.
바로 브리즈번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하면 농장의 한국인 슈퍼바이져가 픽업을 나온다.
픽업비는 따로 몇십불을 줘야한다. 그래도 픽업 받는게 편하다.
숙소 외관 사진은 찍어둔게 없어서 구글맵에서 찾아왔다. 하도 구글맵켜도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아직도 구글맵을 보면 숙소위치를 찾을 수 있다.
딱 이렇게 생겼다. 실제로 나는 저 가운데 집을 썼다.
한 집에 방이 4개 10명이서 쓴다.
같은 집에는 영국인 1명, 프랑스인 3명, 대만인 1명, 일본인 2명, 나와 다른 한국인 1명이었다.
집세는 슈퍼바이져에게 1주일마다 따로 내야한다.
얼마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저렴했다.
그래도 시골동네 10명이서 한집에 사는 가격치고는 비쌌다.
슈퍼바이져가 집을 렌트해서 농장에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집세를 받는 것이었다.
슈퍼바이져 입장에서는 렌트해서 집을 안구해두면 워홀러들이 농장에 일하러 오지 않을테고 저렴하게 받자니 집이 안찼을 때 집세가 부담됐을 것이다.
그래도 워홀러 입장에서는 집세 부담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매일매일 농장에 일거리가 있으면 괜찮다.
하지만 비가 심하게 오는 날은 일을 쉰다. 일거리가 빨리 끝났을 경우는 하루에 3~4시간 일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일을 갈때 농장까지 거리가 꽤 멀다. 차를 타고 20분 30분 정도 걸린다. 매일매일 농장에서 농장숙소까지 픽업비로 인당 5불씩을 내야한다.
대략 하루에 50불이 일일 손익분기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끼니마다 식비, 매주마다 렌트비, 농장에 일을 가는 매일마다 픽업비가 들어가니까 말이다.
그리고 공장은 시급제로 돌아갔지만 농장은 대부분 능력제로 돌아간다.
시간만 때우면 받는 돈이 아니라 본인이 그날 한 일의 성과에 따라 보수가 달라진다.
내가 갔던 딸기 농장의 계약서다.
모종 1000개를 심을 때마다 35불을 받는다. per plant by $0.035 (모종 당 0.035불)
이렇게 계약을 하고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농장으로 간다.
가보면 한국인, 중국인, 대만인, 유럽인 엄청 많다. 내가 있던 농장은 200~300명정도 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30분~1시간 정도 대기 시간이 있다. 오늘은 어디를 작업할지 슈퍼바이져와 농장주가 의논한다.
그 대기시간동안 한국인들끼리 그리고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 친해진다.
보통 호주에 온지는 얼마나 됐는지, 얼마나 돈을 모았는지, 세컨비자를 따러온건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끔 주말마다 모여서 근처 쇼핑센터로 장을 보러가기도 한다.
그때는 슈퍼바이져가 무료로 태워다 준다.
걸어가도 4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참고로 시골 동네에는 아직 인종차별이 남아있다. 지나가는 차들이 창문밖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밤길을 걷다보면 쳐다보면서 한마디씩 하고간다.
반대로 멜버른이나 시드니같은 대도시에서는 밤중에 나가도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밑에는 내가 찍은 숙소 뒷마당 사진.
날씨가 엄청 좋다. 원래 브리즈번 쪽이 날씨 좋기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관광지 '골든코스트'도 브리즈번 근처다.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워홀러들이나 슈퍼바이져들이나 운좋게도 나쁜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같은 숙소를 쓰는 영국인애들과 프랑스애들이 좀 지저분했다.
쓰던 물건 먹고난 음식을 안치우고 진흙탕에서 구르던 발로 거실에서 돌아다닌다.
이때 '서양인의 젠틀함'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사람은 착했다.
우리 농장 사람들은 다들 웃는 얼굴이었지만 같은 숙소를 쓰는 서양애들은 항상 딸기농장에 기타를 가져갔다.
그 힘든 와중에도 여유있게 기타치며 스트로베리~~이러면서 즉흥곡을 부른다.
나름 농장생활도 재밌었다. 악마의 소굴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모를정도였다.
다만 한가지, 돈이 안된다.
능력제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5시간 근무시간동안 5분도 안쉬고 딸기 모종을 심었다.
딸기 모종박스가 떨어지면 트럭이 모종박스를 가져올때까지 1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했기에 다들 딸기 박스가 언제 올지 신경쓴다.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1박스에 딸기모종이 대략 500개 정도 들어있다.
딸기 모종을 다심고 그 모종이 담겨있던 비닐 봉투를 다시 반납하면 비닐 봉투 1개당 18불씩을 계산해준다.
그래서 비닐봉투도 잘챙겨야했다.
중간중간에 정산받으러 가도 되지만 그 동안 모종을 못심게 되므로 보통 일이 끝나고 한번에 정산받으러간다.
보통 하루에 4~5시간 정도는 일했다.
일거리가 원래 많은 시즌이었던건지, 그 농장이 규모가 제일커서 일거리가 많았던건지는 모르겠으나 참 다행이었다.
4~5시간동안 간식시간, 물먹는 시간, 모종 박스 대기시간을 빼면 10분 정도 쉰다.
물이나 챙겨온 간식을 먹는 건 자유지만 능력제다 보니까 다들 물마실 시간도 아껴서 일한다.
진짜 200~300명 중 top10에 드는 사람들은 4~5시간 동안 일해서 혼자서 200달러 가까이 벌기도 한다. 지치지도 않는 타고난 농사꾼이다.
대부분 그렇게 일해도 시간당 급여로 계산해보면 최저시급정도다.
내가 받은돈이 4~5시간 눈치싸움해가며 쉬지않고 일해서 100불을 간신히 채울정도였다.
같은 숙소의 일본인 여자2명도 100불을 벌었다. 2명이서 팀을 이뤄서 해서 100불을 번것이다.
인당 50불로 최저시급으로 계산하자면 절반 정도다.
햇빛은 내리쬐는데 농장에 돌아가는 스프링 클러로 몸이 물에 젖어 엄청춥다. 살은 다 타서 까맣게 된다.
어느 날 집에 가다가 새까맣게 탄 팔다리와 진흙투성이가 된 옷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딸기나 따러 호주에 온게 아니다.
바로 슈퍼바이져에게 연락해서 2주 뒤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만두기전에 미리 말하는 것이 도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차피 거의 모든 호주의 택스잡을 구할때 계약서에 2주 notice기간이 명시되어있다.
택스잡은 세금을 내며 일하는 정식일자리를 말한다. 나중에 세금환급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좀더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다.
그리고 2주 뒤 나는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다.
2부에서 계속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nZL0_9_axmjXxnOjiN7-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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