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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탈리아 여행기 [피렌체편]

지난 1월 6박 8일간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여행 1일차는 저녁때 로마에 도착해서 바로 잤다. 2일차에는 예술의 중심 도시 피렌체를 갔다.

 

 

저기 오른쪽에 빨간 돔이 눈에 보인다. 피렌체 두오모라고 한다. 대성당을 이탈리아어로 하면 두오모라고 한다.

피렌체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296년 착공해서 1469년 완공된다.

왜 이렇게 오래걸렸는지 잠시 알아보자. 먼저 공사의 초기 설계자인 '아르놀포'가 사망하며 30여 년간 공사가 중단된다. 

이후 공사가 재개되지만 1348년 흑사병으로 다시 공사가 중단된다. 공사 막바지에는 저 거대한 석재돔을 건축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중단 되었다.

따라서 51년 간 석재돔 없는 성당의 모습이었다.

 

이 엄청난 크기의 석재돔을 건축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난제를 풀기 위해 건축설계에 지원을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석재돔 공사의 설계자로 지명된 사람은 '브루넬레스키'라는 금세공사였다. 당시에는 예술가나 미술가가 건축에 참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외형과 비율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사의 주담당은 '브루넬레스키'가 맡고 부담당은 '기베르티'라는 사람이 맡게 된다. 하지만 브루넬레스키는 자신보다 능력없는 기베르티가 싫었다. 자신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기베르티의 명성도 함께 올라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브루넬레스키는 병을 핑계삼아 고향에 내려가고 그동안 기베르티가 공사의 책임자를 맡게한다.

하지만 브루넬레스키만큼의 재능이 없었던 기베르티는 공사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할지 몰랐고 결국 공사장을 떠난다.

기베르티가 떠났다는 말을 들은 브루넬레스키는 돌아와서 마저 공사를 완공시킨다.

피렌체 두오모 바로 옆에 브루넬레스키의 동상이 있다. 동상의 시선은 석재돔을 향하고 있다.

 

또한 피렌체 두오모의 천장에는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천국과 지옥이 있다.

 

 

 

그다음은 베키오 궁전

피렌체 두오모에서 얼마 안가서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전이 나온다. 위 피렌체 두오모를 초기설계한 '아르놀포'가 베키오 궁전도 설계했다. 베키오 궁전 앞에는 다비드 조각상도 있다. 하지만 이건 가품이고 진품은 아카데미아 박물관이 소장중이다.

1505년 우리가 잘아는 천재 화가 둘이 이 베키오 궁전에서 그림 대결을 펼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vs 미켈란젤로

궁전 내 벽에 미켈란젤로는 카시나 전투를 주제로 벽화를 그렸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와 밀라노 사이의 전투였던 '롬바르디 전투'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던 중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2세의 무덤을 만들러 바티칸에 불려간다. 대결이 중단된 것이다. 더 이상 대결이 의미 없어졌다고 생각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짐을 챙겨 나왔다. 따라서 두 천재 화가의 벽화는 둘다 미완성으로 남게된다. 현재는 두 벽화 모두 소실되고 모작만 남아있다.

 

조토의 종탑

84m 꼭대기에서 피렌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피렌체 출신 화가 '조토'와 그 제자들이 설계했다. 종탑내 예술품은 복제품이며 진품은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베키오다리

 

베키오 궁전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에서 10분쯤 가면 베키오 다리가 나온다. 아르노강 위에 세워진 다리 중 가장 오래된다리다. 베키오는 '오래된' 이라는 이탈리아어다. 1345년 건설된 로마시대 다리다.

 

이 다리에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9살 단테와 8살 베아트리체가 피렌체의 행사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9년 뒤 저 베키오 다리 위에서 둘은 다시 마주치게 된다.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자 단테는 그날부터 베아트리체에게 푹 빠진다.

하지만 이미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둘다 약혼자가 있던 상황.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버틴다. 그러던 중 베아트리체가 이른나이로 죽게된다. 단테는 그때부터 베아트리체가 있을 사후세계에 관심을 가진다. 그렇게 집필된 책이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책. '신곡'이다.

 

다리 위에 세워진 2층 통로는 당시 피렌체의 명문가 '메디치 가문'의 전용 통로였다. 위에서 '천국과 지옥'을 그린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했기 때문에 '바사리의 회랑'이라고도 불린다. 내부에는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이 걸려있다.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않음. 

아 이쯤에서 메디치 가문에 대해 알고 넘어가자. 원래 메디치 가문은 평범한 집안이었으나 은행업에 종사하며 부를 쌓는다. 단순히 재산을 축적하기보다는 명성을 알리고 싶었던 메디치 가문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도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런 메디치 가문이 어느날 아르노 강을 건넌다. 당시 베키오 다리는 정육점들이 즐비했는데 내장과 못쓰는 고기들을 강에 그대로 던졌으므로 악취가 심했다. 악취를 견디기 힘들었던 메디치 가문은 다리위에 정육점 대신 보석상을 세우고 냄새를 피하기 위해 2층 통로를 만들었다. 그 통로가 위에서 말한 '바사리의 회랑'이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베키오다리를 가는 도중 우피치 미술관을 볼 수 있다. 이 미술관은 예약비 포함 16유로의 입장료를 받지만 내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한 유명 화가들의 진품들이 많이 전시되어있다.

이 우피치 미술관의 전시품 중 대부분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가 기증한 작품으로 이루어져있다.

루도비카는 국가의 영에를 위해, 시민들을 위해, 외국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라는 이유로 메디치 가문의 모든 소장 작품을 우피치 미술관에 기증했다. 

조건은 단 하나. '어떤 경우에도 해외반출을 금한다' 뿐이다.

다음편은 베네치아 편으로 돌아오겠음.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

 

 

 

베키오 다리 위 보석상

 

 

 

베키오 다리

 

 

 

 

베키오 궁전

 

 

 

피렌체 두오모

 

 

조토의 종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