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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97년 외환위기]

 

아나바다 운동. 위기. 당시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저 단어들이 매우 심각한 상황을 나타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97년 외환위기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쌓여서 터졌다. 뉴스에서는 수많은 원인들을 제각각 내놓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는 나 스스로 판단해보겠다. 

남의 생각만 곧이 곧대로 듣지 말고 나의 논리와 생각으로 살펴보자.

 

뉴스에서 말하는 외환위기의 발생 원인 첫 번째, 경직된 환율제도

 

외환위기 원인을 경직된 환율제도로 꼽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90년부터 한국은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사용했다. 시장 평균 환율제도란 전날 외환 거래량에 가중 평균해서 일일 환율 변동에 제한을 둔 제도이다.  

이러한 제한적인 원/달러 환율제도 속에서 1995년 미국이 달러강세를 내세웠다.

따라서 한국은 환율변동폭 내에서 환율을 조정하기 위해 달러를 내다 팔았고 원화를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며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두 번째, 무리한 자본시장 개방.

OECD 가입 요건에 맞추기 위해 1992년부터 국내 자본시장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개방했다. 이로 인해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 되었다. 따라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잃고 큰 타격을 받았다.

 

나의 생각

 

환율제도의 문제 볼 수는 없다. 1994년11월부터 1995년 11월까지의 일일 변동범위는 1.5%였다. 그리고 1995년 12월부터 1996년 6월까지의 일일 변동범위는 2.25%였다. 아무리 미국에서 강달러 정책을 쓴다 한들 하루 만에 환율이 1.5% or 2.25%를 훨씬 초과하여 변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 개방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1992년 1월 외국인의 국내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를 처음으로 허용하긴 했다. 하지만 전체 투자한도는 일반 상장법인 10%, 공공 법인 8%로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원화가 크게 고평가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1991년 1달러/733원에서 1993년 1달러/802원으로 원화가치는 하락했다. 

 

 

 

  

위기가 터지기 전, 미국이 강달러 정책을 내놓던 1995년도 별 다를 바 없다. 원화가치는 달러당 771원으로 1990년보다 하락했다.

 ( 1995년 이후로도 계속해서 원화가치가 절하된다. 하지만 96년 부터는 경상수지 적자가 시작되면서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따라서  96년 환율로 위의 자본시장과 환율제도를 반박하기는 논리가 맞지 않다.)

 

 

 

뉴스에서 말하는 외환위기의 발생 원인 두 번째, 기업의 부실경영

한라그룹과 진로는 자본 잠식 상태였다. 해태는 1,500%가 넘는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당시 금융사를 제외한 30대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500%를 넘었다. 롯데가 216%, 삼성이 300%대로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었다. 

 

나의 생각 

기업의 부실경영이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1996년 한국의 단기금리는 12.6%였다. 같은 해 미국은 5.6%, 일본은 0.56%였다. 한국의 종합금융사들을 포함한 아시아의 금융사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단기 자금을 빌려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국에서 대출을 해주었다.

 

한국의 종합금융사들이 굳이 장기대출을 받지 않고 단기대출을 받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대출을 받아오기엔 금리가 더 높았고 까다로웠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고 절차가 쉬운 단기대출을 받아온 것이다.

 

한국의 종합금융사들은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의 국채와 회사채도 사들인다. 수익이 높고 리스크도 높은 투자였다.

 

또한, 종합금융사에서 막대한 자금으로 단기대출을 시행하자 기업들은 몸집 불리기에 나선다. 회사들은 몸집을 불리는데 필요한 자본재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996년 경상수지가 적자 전환된다.

 

홍콩 태국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홍콩 증시가 하루 만에 10% 넘게 폭락한다. 뒤이어 대만의 증시도 폭락한다.

아시아 경제의 약점이 부각되자 외국자본들은 아시아에서 탈출하기 시작한다. 

폭락을 본 외국인 투자자들의 두려움은 더 큰 매도로 이어졌다.

 

'한국 외환보유액 150억 달러 남았다' 

미국의 거대 방송사이자 신문사, 블룸버그가 1997년 11월에 보도한 내용이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44억 달러였다. 블룸버그의 오보였다. 하지만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도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위처럼 금융사가 저런 부실한 대출을 남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금융사에 대한 관리 감독 시스템이 부실했다. 게다가 당시 한국에는 관치금융 분위기가 퍼져있었다. 관치금융이란 정부가 민간 금융사에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일부 그룹들은 부실한 재무상태에도 막대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뉴스에서 말하는 외환위기의 발생 원인 세 번째, 정경유착

 김영삼 정권과 결탁한 일부 기업들이 부실한 재무구조로 대출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나의 생각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가 난다. 한보 철강은 70~80년대 건설 붐에 올라타서 대기업의 반열에 들어온 회사다. 이후 계속해서 몸집을 키우며 회사채를 발행한다. 한보그룹의 자기 자본은 2200여 억 원 그리고 부채는 5조 원이었다. 너무 커진 부채 때문에 은행은 추가 대출을 거부한다. 재계 14위 한보그룹은 그렇게 파산한다.

 

2018년 기준 재계 14위는 한진그룹이다. GM이 군산공장만 철수해도 난리가 나는 마당에 한진그룹 정도 되는 기업이 도산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큰 이슈였을지 감이 온다.

 

한보의 파산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해준 기업들에게 추가 대출을 거부하고 자금 상환을 요구한다. 결국 자금이 부족했던 삼미그룹, 해태, 한라 등의 대기업이 추가로 도산한다.

이런 여파로 흑자를 내고 있던 일부 대기업과 중소기업들도 단지 현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산을 신청하게 된다.

 

 이후 한보그룹의 대출 특혜 의혹으로 김영삼의 측근들과 금융기관장들이 구속된다. 심지어 김영삼의 차남까지 구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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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40% 정도이다. 세계각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서 안정성을 높였으며 외환보유고 또한 2018년에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8년 4분기 기준 97%이다. 전세계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의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37.5%와 72.7%이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부동산 대출로 이루어져 있다.

gdp대비 집값이 높다는 말이다.

기준금리가 급등하면 도산할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의미다. 

 

지난해부터 미국은 기준금리를 꾸준히 인상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과 역전되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빠져나갈 위험이 컸다.

그리고 지금 미국을 따라서 금리를 인상해 두지 않으면 경기가 더 악화되었을 때 '기준금리 인하'라는 중요한 카드를 쓰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금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한다. 올렸다가는 길거리에 나앉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친기업 정책을 쓰고 금리를 올려도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마당에 반기업정책을 써서 경기를 얼어붙게 만들고 금리까지 올린다면 97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사태를 볼 수 있을 것이다.